8월 6일 - 갯깍 주상절리
뻥 뚫린 하늘에 섭씨 33도 이상의 자외선이 여과없이 내리쬐는 여름의 한낮이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고 있음에도 땀은 비 맞은듯 축축하게 온 몸을 적시고 이른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상황이 이런 때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는 송악산 탐방로를 향해 오르고 있었다.
산방산쪽의 풍경을 파노라마로 담아내기 위해서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이건 직업이 아니고 사진 찍는것은 내 일이 아니다.
그럼으로 인해서 나는 왜 이러고 있는지에 대한 원초적인 의문이 자꾸만 머릿속을 자극한다.
그러면서도 두 다리는 모슬포 송악산을 오르고 있다.
어찌되었건 파노라마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때마침 모슬포 현지인 동생의 연락을 받고 오늘의 과업을 마쳤다.
저녁 메뉴는 닭 샤브샤브란다.
전형적인 닭 한마리 스타일인데 굳이 샤브샤브 형식을 고수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맛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특별할것도 없는 지극히 보편적인 닭한마리 같았다.
참이슬만 먹다가 마지막병을 한라산으로 선택했다.
그전엔 참이슬 같은건 먹지도 않던 이들이 주종을 바꿨다는건 여지없이 그들에게도 세월의 풍파로 몸이 힘들어 한다는 의미일것이다.
네명이서 소주 7병을 까고 2차로 음주가무와 양주까지 까마시면서 밤이 깊어진다.
다음날.
여지없이 날씨는 폭염이랄까?
송악산 해변가에는 여러개의 동굴이 있다.
일제시대의 잔재인데 해변의 쓰레기는 누가 좀 치우지?
일제의 잔재는 치울수 없겠지만 쓰레기정도는 치울수 있잖아?
제주만 그런게 아니라 육지의 여느 바닷가를 가더라도 바닷가에 떠밀려온 쓰레기는 한결같이 외면하더라.
바다 자체를 전세계적인 공공재라고 생각해봤을때 거기서 얻어지는 이득에 대해선 자신들의 권리를 칼같이 주장하겠지만
그에 따른 책임에는 공공의 책임으로 타인에게 떠넘기는 심리 아니겠는가.
굉장히 조그만 선착장이었는데 규모가 커졌다.
유람선도 다닌다.
배안에서 안내방송이 여기까지 생생히 들린다.
그냥 메가폰 정도로만 말해도 충분할텐데.
설상가상의 상황이다.
날씨는 여느때처럼 푹푹 찌는데다 어제 마신 술기운이 북받쳐 올라온다.
시간이 점심때가 지나는데 마치 방금전까지 술마시고 돌아다니는 느낌이랄까?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가 몸 속의 알콜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평소보다 2배는 힘들다.
산방산 절벽아래 위치한 산방굴사
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데 여기 올라간것을 굉장히 후회했다.
그 체력을 아꼈어야 했는데....
안그래도 술기운 올라와서 힘든 와중에 나는 왜 여길 올라갔을까.
하멜인가 하는 표류선박이 보인다.
표류중에 제주에 떠밀려 왔다가 눌러 앉았다던가 이곳 문화를 전파했다던가 하는 내용의 전시관이다.
10년전에 가본곳이라 기억이...
여기는 서귀포의 갯깍 주상절리
10년전 이곳 생활하며 사진동호회 활동당시 한 번 왔던 기억이 있는데
그땐 정확한 지명도 몰랐고 심지어는 현지 도민들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이제는 뭐 손안에 인터넷이 있는데 ...
잠시 동굴안에 그늘에서 태양을 피한다.
밖은 생지옥 같은 더위
이 안에서 가방 내려놓고 30여분을 앉아 아무것도 안한채 쉬는데 마침 나 말곤 아무도 없었다.
외도의 알작지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몽돌 해변이다.
돌은 전부 까맣고..
이곳 주차장 옆에 벤치에서 가방 내려놓고 신발 벗고 무장해제한채로 한참을 쉬다가 무겁게 발을 떼었지만 막상 다음 포지션을 잡을수 없었다.
아니, 잡을 생각이 없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이런 지독한 더위에 뭘 한다는것 자체가 무리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고 있음에도 충분히 지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귀리 농협 근처였는데 도로가 바로 옆의 아무 식당에 멈춰서 자리물회를 시켰다.
오후 5시 정도였던거 같은데 몸도 지치고 배도 고프고, 또 바이크는 과열되니 저속에서 알피엠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이젠 확실히 증상을 느낄수 있는게 한시간 이상 주행하면 저속에서 알피엠이 불안정하면서 시동이 끊긴다.
다른 문제는 없기에 바로 시동거는데 문제는 없다.
단지 맥아리없이 시동이 툭 꺼진다는점.
그래서 겸사겸사 엔진도 쉬게 할 겸 쉬어가는 타이밍이다.
8천원인지 9천원인지 했는데 아무데나 들어간집 치곤 성공적인 자리물회.
이제서야 밝히는 부분이지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 바로 이 물회였던거라는점.
포항에서 물회를 먹어본 적이 있었다.
굉장히 유명해서 줄서서 기다려야하는 그런 업소였는데
빨갛고 매우 달고 내용물도 굉장히 단촐해서 꿀물에 고추장 조금 풀어 먹는 느낌이었다.
매우 최악이었던 악몽같은 경험이었다.
이후에도 일때문에 여러 지방을 다녀보면서 느꼈던게 사실 경상도 음식은 일부 기괴한 맛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산초를 쓴다거나 지나치게 달거나...
서울 주변의 어느 횟집에서도 물회를 시켜보면 이와같은 포항의 형식을 갖춘 물회였다.
제주 물회를 먼저 먹어본 나에겐 절대 만족할 수 없는 형식이다.
따라서 이 물회라는 것은 어디서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아이템이라 현지에서만 만족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물회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면서 모텔의 에어컨으로 몸을 식히면서 숙면을 취하면서
오늘 하루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나는 왜 이 힘든 여정을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나만 힘든건지, 다들 이렇게 힘들게 여행 하는지 말이다.